그를 믿고 따라간 곳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대부가 준 택시티켓은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 티켓만 보여주면 택시기사들은 주인을 모시듯이 우리를 환영해줬다.
"언니 어디가는거야?"
"여행이야."
그는 잠자코 우리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의 창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다 똑같았다. 서로 길거리에 모여 앉아 있거나 찢은 박스로 자리를 깔고 신문지로 자는 사람들도 보였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런곳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은 없었다. TV와 언론에서 조차도 알지 못한 사실이었다. 계속봐왔던 세상에서의 걱정거리는 이곳 사람들의 걱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중동에 젊은 사람의 순교, 폭탄테러라고 말하는 언론, 이런 것들 말고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었던 늘 일상적이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 가난이라는 단어는 분명 익숙하게도 써왔으며 주변에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더 비참한 가난이라는 것은 세상의 어둠속에 존재했다. 다만 조금만 기울이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말이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식빵에 야채스프, 샐러드에요. 간단히 배를 채우기엔 좋죠."
"교회앞에서 새워주세요." 킬러인 그가 말했다.
교회는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더럽기도 했고, 구린 냄새도 났다. 다만 점심을 먹기위한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끼의 식사에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다음 날 다음 날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곳은 왜 온거죠?"
"처음 할 말이 그겁니까. 이름이 뭐죠?"
그러고 보면 이름도 모르고 지나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부르고 기억할 것은 나에게 이름이 아닌 얼굴과 나의 미약한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름. 이름. 이름.
"엘베에요. 이름이 뭐죠?"
"랴담입니다. 항상 당신과 이 애를 지켜주기로 교회앞에서 약속합니다. 애야 이름이 뭐니?"
"실라토라."
"그래 실라토라도 지켜주기로 약속한다."
급식소의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표정들은 어두웠다. 급식을 나눠주는 봉사자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줬다. 계속지켜보니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랴담, 정말 오랜만이에요. 자 맛있게 먹어요."
"감사합니다." 봉사자는 랴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오신 분이네요. 꼬마도 처음이구나.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엘베, 쟤 동생은 실라토라에요."
"앞으로 오면 기억할 거에요."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건가요?"
"당연하죠. 이름마저 없으면 저들은 그냥 음식을 먹고 나가는 손님이 되는 거니까요. 이름마저 없으면 가진 것은 완전 없게되는 것이죠."
"당신의 이름은 뭐죠?"
"도미니까. 잘부탁드려요 엘베."
"잘부탁드려요. 도미니까."
우리도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들은 꽤나 맛있었다. 입에서 도는 마약성분같은 향이 이곳의 사람들이 한끼의 식사에 근심을 잊은 것 처럼보인다. 나는 계속 주변사람들을 쳐다봤다.
"음식식어요. 계속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진 않을꺼에요."
"이곳은 왜 온거죠?"
"신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엘베, 당신과 실라토라에게. 이곳은 재가 자란곳입니다. 도미니까는 저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죠. 나를 보며 반기지 않는 것은 모두를 똑같이 대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녀에게 이곳에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
"전 이런 곳에서 자랐습니다. 돈이 없어 굶주리고 사는 사람들속에서 말입니다. 이곳에서 오래 지내게되면 자동적으로 느끼게 될겁니다. 재가 왜 이일을 하게 되었고, 해야만 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당분간 도미니까가 내어준 하나의 방에서 머물 수 잇었다. 방의 크기는 작았고 많은 수를 가지고 있었다. 병원도 아니지만 노약자와 임산부들 그리고 다친 병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도미니까는 점점 예산이 바닥이 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계속가다가는 무료식사도 공급하지 못하게 될 판이란다.
생각없이 멍해질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람을 도울 길이란 정말 마땅치가 않았다. 일자리의 문제도 그렇지만 이들을 구제할 방법은 인간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이곳의 땅은 어느부자가 한꺼번에 다 사드렸어요. 이젠 이곳도 저들이 살수있는 곳이 아니에요. 아마 이 많은 사람들을 쫓아내려 하겠죠. 어떻게 될지는.. 다른 곳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거에요."
수많은 사람들의 의미없고 멍한 시선들이 바라보는 것은 많은 것도 아니고 단지 TV속의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왜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실라토라와 같이 침대에 누웠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언니, 나 돌아다녀보고 싶어."
"내일, 맛있는 것도 먹고 갖고 싶은 것도 사줄께."
나와 실라토라는 같이 반삭을 했고 모자를 눌러썼다. 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은 번화가로 많은 외국인들이 여행을 오며 어학연수를 오는 곳이었다. 도시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넘쳐나고 높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창가를 바라보는 사람이며, 거리에 악세사리 장사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악세사리 하나씩을 고르고, 커피와 우유를 마시고, 거리에 나와 많은 사람들과 부딛히기도 했다. 실라토라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 또한 즐거웠다.
버스를 타고 요금을 계산하려 했는데 지갑이 잡히질 않았다.
"세명분입니다." 랴담이 어느 새 버스를 타고 돈을 지불했다. 얼굴에 콧수염과 선글라스를 썼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셋은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어떻게 알고 오신거죠?"
"약속했잖습니까. 지켜주기로, 그리고 여기 지갑."
"어떻게 당신이 갖고 있는 거죠?"
"소매치기 당한겁니다. 어학연수를 오는 외국인들을 노리기도 하고, 현지인들도 당하기 쉬워요. 거리는 활기차고 즐거워 보이지만 실제론 아니란 말입니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살기위한 직업입니다."
"......"
"이 버스안에도 있죠. 하지만 전문적으로 그런 소매치기를 잡는 경찰이나 용병들에게 잡히면 저들은 처음 손가락을 잘리게 됩니다. 한번은 봐주는 거죠. 하지만 두번째 걸리면 아예 손을 잘라버립니다."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 못보셨나요. 다른 사람의 손이 있는 위치쯤에 시선이 가 있을겁니다. 손가락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경계하기 위함이죠."
"그래도 저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일자리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 번화가에서 일자리를 필요로하는 소원보다 모자르니 말입니다."
"소매치기 할 줄 아세요?"
"이 지갑을 보면 알겠죠. 소매치기를 터는 소매치기수준입니다."
"그럼, 소매치기하는 방법좀 알려주세요."
나는 쉽게 소매치기하는 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와 내가 서로 부딛치면서 서로의 물건을 주머니에서 빼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요령이 붙고 계속하다보면 금방하게 된다. 하지만 실전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실패하고나서 도망가야할 때도 있었고 소매치기 패밀리들과 싸움도 있었다.
번화가는 밤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실라토라를 재우고 나와서 소매치기를 연습하기로 했다. 대상은 비싸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모자 쓴 나를 경계하는 눈빛도 있었지만 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들의 지갑은 손쉽게 들어왔다. 그러나 돈은 별로 없었다. 카드화된 사회에서 현금이라는 것은 위험하기만한 돈이었다.
여러사람들 틈의 손동작을 보다보면 소매치기를 알게되고 서로를 경계하며 구역싸움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조직화된 움직임에서 그들의 돈은 어느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일까.
눈여겨 보던 한명을 미행했다. 상당한 솜씨였다. 아마 그도 나를 알아봤을 것이다. 번화가의 어두운 골목길에 반짝이는 클럽간판이 보였다.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음악소리가 들렸다. 리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클럽으로 보였다. 안으로 들어섰다.
리듬이 느껴지는 음악, 반짝거리는 조명들, 조명아래의 율동들, 여기 모든 사람들의 복장은 평범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율동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온다. 어마어마한 덩치의 소유자가 나에게 500cc맥주를 건넸다.
"처음보는데, 마셔 공짜야." 내가 미행했던 그 자였다.
그리고 배웠던데로 행동했다.
"이름이 뭐죠?"
"알렉세이. 넌?"
"엘베."
"여긴 정말 좋은 곳이야. 모두 모여 춤을 추지. 다른 구역의 녀석들도 다 이곳에와서 아무것도 없는 벌거숭이가 되어서 서로 어울리며 즐기는거야."
그는 자신의 잘린 손가락을 보여준다.
"이건 존경받을 수 있는 용자의 손이지."
"처음오는 신입에게 한가지 말해주자면 이곳에선 막 들이댄다고, 그렇다고 불쾌하게 여기면 안되 그냥 즐기자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런 엄청난 큰 몸으로 어떻게 소매치기를 할 수 있죠?"
"불가능해보이니까 경계를 더 안하는거야."
서로의 몸을 기대고 비비며 흐름에 몸을 맡긴다. 몰랐던 즐거움에 시간은 정지되었다. 조명의 빛은 과거를 어둡게 만들고 현재의 쾌락을 빛나게 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매일 '파라다이스'클럽에가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즐겼다. 클럽에는 하나의 모금함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있는 돈은 모두 소매치기와 범죄를 저질러서 모은 돈을 조금씩 모아 놓은 돈이란다. 클럽은 그 돈으로 운영된다. 절대로 하루에 운영비를 못 채운 적은 없다고 했다. 나 또한 모금함에 돈을 냈다. 그리고 많은 소매치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을 제법 많이 쥔 날이 있었다. 악세사리 노점상에게 실라토라의 선물도 사고, 랴담의 선글라스를 골랐다. 오늘은 클럽에 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가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때 내 손을 잡아끄는 힘이 느껴졌다. 양 옆과 뒤를 보니 나를 매섭게 째려보는 눈들이 보였다. 소매치기에 걸린 것일까.
이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특히 그들은 대범했다. 누군가 신고를 해준다는 기대도 걸어선 안된다. 나는 수배자다.
5명정도의 무리들은 나를 조용하고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가더니 얼굴과 복부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은 돈들을 빼앗고 떠나려했다. 어둠속에서 밝은 세상으로 떠나는 다섯무리의 그림자가 멈추어섰다.
짝거리는 소리가 나고 두세명이 쓰러진다. 내 앞에는 알렉세이와 2명의 깡패들이 있었다.
"나쁜놈들, 같은 사람들끼리 싸우면 더이상 서로의 안전을 보장 못한다고."
그런데 나를 지켜주겠다던 랴담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알렉세이는 가볍게 5명을 눕혔다.
5명중 한명이 알렉세이에게 총을 겨눈다. 알렉세이는 손을 든다. 그들은 총을 쏠 생각은 없어보였다. 다만 돈을 가지고 자리를 뜰 생각뿐이다.
- 픽.
어디선가 소음총소리가 들리고 깡패의 손에 들린 총을 날려버렸다. 랴담이었다.
"돈을 놓고 가면 살려줄께." 깡패무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대상을 찾아 밝은 세상속으로 뛰어갔다.
"괜찮아?" 랴담이 말했다.
"괜찮아요 이정도쯤이야." 물론 나도 그들에게 어느정도 저항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5명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이기려한다면 극단적인 방법으로 공격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랴담?" 알렉세이는 랴담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오랜만이야. 아직 소매치기를 하고 있던데."
"넌 정말 크게 됐구나. 도미니까에게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